소꿉놀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시작되었다. 놀이터에서는 돌멩이와 잎으로, 집에서는 장난감을 통해 시작된 그 놀이는 나에게 하나의 역할을 주었다.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 이상적이라 생각되는 여성의 흉내를 내는 역할이었다. 또래인 여자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대부분 같은 경험이 있다.
우리 집 창고에는 냉장고 장난감이 하나 있다. 유아용으로 만들어진 분홍색 장난감 냉장고는 언제부터 집에 있었는지, 누가 주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나의 장난감이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대형마트 여아용 장난감 코너에 가면 지금도 그런 것들을 판매하고 있다. 여아용 코너에서는 분홍색 세탁기, 분홍색 청소기, 심지어는 분홍색 유모차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것에 반해, 옆에 붙어있는 남아용 장난감 코너로 가면 파란 계통의 로봇, 자동차와 같은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었다.
분홍색 장난감을 선물 받으며, 나는 여성성을 강요받고 있었다. 친구들도 그랬다. 당연하다는 듯이 시작된 소꿉놀이처럼, ‘여성스러워야 한다.’라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억압하고 있었다.
여성성에 대한 강요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유아기를 거쳐온 여성을 모델로 섭외했고, 어릴 적 썼을 법한 장난감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모델들은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여성상을 연기했다. 물론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억압은 전 세대의 여성들에게도, 전전 세대의 여성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래서 레트로한 분위기의 의상과 배경을 선택해 촬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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